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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이야기

사막의 도시 페트라, 사람들은 물을 어떻게 구했을까요?

by We하는 세상 2026. 10.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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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페트라라는 도시들어보셨을까요?  페트라는 요르단 남부에 있는 고대 도시 유적입니다. 붉은빛 바위를 깎아 만든 건축물로 유명하며, 나바테아인들이 교역의 중심지로 발전시킨 곳입니다. 오늘은 사막의 도시, 페트라에 대해 소개할까 합니다. 좁은 협곡을 지나면 나타나는 알카즈네가 대표적인 유적이지만, 페트라는 이 건축물 하나만을 가리키는 이름이 아닙니다. 주거지와 신전, 무덤, 길과 물 공급시설이 함께 있던 도시였습니다.

이곳 사람들은 샘물을 끌어오고 빗물을 모아 저장하면서 건조한 환경에 적응했습니다. 물이 부족한 시기를 대비하는 동시에 갑자기 쏟아지는 비에도 대응해야 했습니다. 페트라가 어떤 도시였는지, 물을 어떻게 구했는지, 이후 왜 쇠퇴했는지를 알면 화려한 건축물 뒤에 숨은 생활의 모습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막의 도시 페트라, 사람들은 물을 어떻게 구했을까요?
사막의 도시 페트라, 사람들은 물을 어떻게 구했을까요?

 

페트라는 어떤 사람들이 살던 도시였을까요?

페트라를 발전시킨 나바테아인들은 아라비아와 주변 지역을 연결하는 교역에 능숙했습니다. 향료를 비롯한 물품을 운반하는 상인들이 이곳을 오갔고, 페트라는 이동과 거래의 중요한 거점이 되었습니다. 먼 길을 여행하는 사람들에게는 물과 식량을 구하고 쉬어갈 장소가 필요했습니다.

사진으로 보면 페트라의 건물이 모두 바위 안에 들어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바위를 깎아 만든 건축물과 따로 세운 건물이 함께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생활하는 공간과 종교시설, 교역에 필요한 장소가 연결된 도시였던 것입니다.

대표 유적인 알카즈네는 기둥과 장식이 있는 정면을 거대한 바위에 새긴 건축물입니다. ‘보물창고’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름만 보고 실제 보물을 보관하던 창고라고 생각하면 곤란합니다. 일반적으로 무덤과 관련된 건축물로 해석됩니다.

페트라가 자리한 곳도 끝없는 모래벌판은 아닙니다. 산과 협곡이 이어지는 건조한 지역이며, 주변에는 샘이 있었고 계절에 따라 비도 내렸습니다. 다만 물이 늘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에, 들어오는 물을 모으고 필요한 곳으로 보내는 기술이 중요했습니다.

상인과 주민이 모여 사는 도시에서는 마실 물만 있으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음식을 만들고 몸을 씻는 데도 물이 필요하며, 짐을 나르는 동물에게도 공급해야 합니다. 페트라가 교역도시로 성장하려면 이런 수요를 뒷받침할 물 관리가 필요했습니다.

페트라의 사람들은 물을 어떻게 모았을까요?

페트라의 물 공급은 샘물과 빗물을 함께 활용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샘에서 나온 물은 수로와 관을 통해 도시로 끌어왔고, 비가 내릴 때 주변에서 흘러오는 물은 저장시설에 모았습니다. 한 가지 공급원에만 의존하지 않고 여러 방법을 연결한 것입니다.

바위에 낸 수로와 토기로 만든 관은 물을 옮기는 통로였습니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의 성질을 이용했지만, 아무렇게나 길을 내는 것으로 충분하지는 않았습니다. 물이 필요한 장소까지 도착하도록 지형과 경사를 고려해야 했습니다.

물을 보관하기 위해 바위를 파서 만든 저장 공간과 저수시설도 마련했습니다. 비가 오는 시기에 물을 모아두면 건조한 시기에 사용할 수 있습니다. 집에서 단수를 대비해 물을 받아두는 것과 비슷한 원리지만, 페트라에서는 이를 도시의 여러 시설과 연결했습니다.

물을 모으는 과정에서는 흙과 모래가 함께 들어올 수 있습니다. 페트라 대사원 발굴에서는 물에 섞인 입자를 가라앉히는 침전조로 해석되는 시설도 확인되었습니다. 다만 이를 오늘날의 정수장과 같은 시설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물을 관리하는 기술이 있었다는 사실과 현대적인 정수 처리는 구분해야 합니다.

물 부족과 반대되는 위험도 있었습니다. 짧은 시간에 강한 비가 내리면 협곡으로 급류가 몰려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페트라에서는 댐과 터널을 이용해 위험한 물의 흐름을 다른 방향으로 돌렸습니다.

이처럼 물 공급시설과 홍수 방어시설은 역할이 달랐습니다. 생활에 사용할 물은 모으고, 도시를 위협하는 급류는 우회시켰습니다. 페트라의 기술은 물을 많이 확보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상황에 따라 물의 흐름을 다르게 다루는 데 있었습니다.

물을 관리하던 페트라는 왜 쇠퇴했을까요?

페트라의 쇠퇴를 단순히 물이 부족해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도시의 번영에는 물 공급뿐 아니라 교역로와 정치적 환경도 영향을 주었습니다. 상인들이 다른 길을 이용하면 기존 거점에서 이루어지는 거래도 줄어들 수 있습니다.

페트라는 서기 106년 로마 제국에 편입되었지만, 그때 곧바로 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이후에도 도시 생활이 이어졌고 비잔틴 시대의 종교시설도 남아 있습니다. 여러 시대에 걸쳐 도시의 역할과 생활 모습이 달라졌다고 보는 편이 정확합니다.

교역로의 변화는 페트라의 상업적 위상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물품이 다른 경로로 이동하면서 교역 거점으로서의 중요성이 약해진 것입니다. 물을 공급하는 기술이 뛰어나더라도 사람들이 오가는 길까지 그대로 유지할 수는 없었습니다.

지진도 피해를 주었습니다. 서기 363년의 지진으로 여러 건축물이 손상되었지만, 이후에도 도시 활동은 계속되었습니다. 따라서 한 번의 지진으로 모든 주민이 떠났다고 설명하면 오랜 시간에 걸친 변화를 놓치게 됩니다.

또한 페트라는 지역 사람들에게 완전히 잊힌 장소가 아니었습니다. 주변 공동체는 이곳과 관계를 이어왔고, 옛 물 저장시설과 동굴을 활용하기도 했습니다. ‘사라진 도시’라는 표현은 옛 교역도시의 번영이 쇠퇴했다는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좋습니다.

페트라의 사람들은 샘물과 빗물을 모으고 저장하며, 갑작스러운 홍수에 대비해 도시를 유지했습니다. 붉은 바위 건축물이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이라면, 작은 수로와 저수시설은 그곳의 생활을 가능하게 한 기반이었습니다. 페트라는 건조한 환경에서도 물의 흐름을 이해하고 관리하면 도시가 성장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역사입니다. 사라진 도시, 페트라가 정말 사라진걸까요? 오늘은 페트라의 역사를 통해 잊혀짐이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하게됩니다^^

 

참고자료: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의 페트라 소개, 요르단 문화재청의 페트라 설명, 브라운대학교 페트라 대사원 발굴 보고서와 역사 소개, 페트라의 물 공급 체계를 분석한 연구 논문을 참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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